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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스기사 스크랩] "평창 패럴림픽 준비하는 노르딕스키 국가대표팀"
작성자 노르딕
작성일 16-10-25 09:22

“눈 위에선 휠체어가 필요 없다 색깔 구별 없이 메달 3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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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강원도 평창군의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만난 노르딕스키 장애인 국가대표팀 선수단. (앞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의현 선수, 이정민 선수, 유기원 트레이너, 장덕진 코치, 최보규 선수, 권상현 선수, 서보라미 선수, 최종인 감독, 김현우 가이드.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2006년 2월, 대학생 신의현씨가 졸업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미 유통업계에 취업한 그의 앞날은 밝아 보였다. 주변에선 취업에 성공한 신씨를 부러워했다. 졸업식을 앞두고 기분이 들뜬 신씨는 친구들과 평소보다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신씨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차량 운전대를 잡았다. 신씨의 눈꺼풀은 천근만근인 상태였다. 신씨는 운전을 하다 그만 깜빡 졸고 말았다. 사고는 순식간에 발생했다. 반대편 차선의 차량과 충돌한 신씨의 차량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그 사고로 신씨는 목숨은 건졌지만 두 다리를 잃으며 장애2급 판정을 받았다. 신의현(36) 선수는 현재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팀의 맏형이다.

지난 9월 30일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팀이 훈련 중인 강원도 평창군의 알펜시아리조트를 찾았다.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팀은 신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선수들이 체력훈련을 하고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들어서자 땀 냄새와 함께 구령 소리가 들렸다. 선수들은 코치들과 구령을 외치며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바벨을 들고 있었다. 웃통을 벗은 남자 선수들의 복부에는 소위 ‘식스팩’이 선명했다. 휠체어에 앉아 운동을 하는 선수는 한 명뿐이었다. 선수들의 이마는 물론 운동복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격렬한 운동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이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사이클 훈련을 마친 한 선수가 코치의 팔을 붙잡으며 내려왔다. 그 선수는 코치의 팔을 놓지 않고 매트가 놓인 곳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코치의 도움을 받아 이동을 한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시각장애 선수였다. 이렇게 노르딕스키를 하는 선수들은 척수마비, 하지장애, 시각장애 등 장애의 종류가 다양한 편이다.

이들이 평창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노리는 종목인 노르딕스키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반도 등 북유럽 지방에서 발달한 스키다. 언덕이 많은 설원을 누비는 스키경주로 크게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두 가지로 나뉜다. 크로스컨트리는 노르딕스키의 한 종목으로 스키의 마라톤이라고도 불린다. 이 종목은 평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각 3분의 1씩으로 이루어진 코스를 완주하는 데 걸린 시간으로 순위를 가린다. 패럴림픽에서는 거리별로 7.5㎞, 12.5㎞, 15㎞ 등의 코스가 있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사격이 결합된 종목이다. 경기는 일정한 거리를 크로스컨트리로 주행한 뒤 사격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격에서 맞히지 못할 경우에는 정상 주로가 아닌 벌칙 주로로 주행해야 한다.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모두 사실상 설원을 얼마나 빠르게 질주하는지가 관건인 경기이다.

이들이 노르딕스키 선수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국가대표팀 유일한 홍일점인 서보라미(30)씨는 원래 무용가를 꿈꿨다. 2004년 4월 당시 여고생이던 서씨가 2층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며 굴러떨어졌다. 정신을 잃은 서 선수가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씨는 단순히 다리만 부러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척수를 다쳐 평생을 걷지 못하게 됐다”면서 “딸이 힘들어할 모습을 떠올리니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간 서씨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딸을 일으킨 건 어머니였다. 자신의 발이 돼주는 어머니의 헌신을 외면할 수 없던 그는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대학교수의 추천으로 장애인 스키캠프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됐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서보라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장애인용 스키에 앉아 설원을 내달렸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내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팀의 막내 권상현(20) 선수도 “노르딕스키를 통해 삶의 새로운 목표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권상현씨는 분만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경우다. 4.8㎏의 우량아로 태어난 그가 장애인이 된 건 의료사고 때문이었다. 분만 당시 간호사가 그의 왼팔을 무리하게 잡아당겼다. 권상현씨는 “태어날 때 강한 힘이 왼팔에 가해지는 바람에 팔의 신경이 죽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그 후로 5번의 수술을 했지만 현재는 왼팔을 거의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권씨의 양팔은 비대칭이 심했다. 멀쩡한 오른팔과 달리 왼팔은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손가락도 온전히 펼 수 없는 상태였다. 권씨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권씨는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 그의 체중은 120㎏까지 불어났다. 보다 못한 담임교사가 그에게 운동을 권했다. 그때 시작한 게 바로 노르딕스키였다. 노르딕스키를 시작하며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지난 3년간 스키를 타며 무려 50㎏을 감량했다. 매일 하루 7~8시간의 훈련량을 모두 소화한 결과였다. 권씨는 “의기소침했던 내가 이제는 운동선수로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면서 “내게 노르딕스키는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현재 권씨는 노르딕스키선수로 활동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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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스키를 타고 있는 신의현 선수.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사연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

시각장애인인 최보규(23) 선수는 7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다. 최씨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과도한 산소 공급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 시력을 잃었지만 그가 꿈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맹학교에 다니며 시작한 노르딕스키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한 최씨의 설명이다. “시각장애인 같은 경우 거리에서 달리기는커녕, 맘 편하게 걷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키를 타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마음껏 설원을 누비는 순간만큼은 내가 시각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해준다.” 그렇다면 시각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어떻게 설원을 질주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 선수는 가이드와 함께 경기에 참가한다. 가이드는 시각장애인 선수와 함께 스키를 타며 길 안내 역할을 한다. 거친 비탈길을 누비는 노르딕스키 종목 특성상 시각장애인 선수와 가이드의 호흡은 매우 중요하다. 사격을 해야 하는 바이애슬론 같은 경우 시각장애인 선수의 안전을 위해 전자총으로 사격을 진행한다. 사격방식은 전자총이 타깃에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소리를 듣고, 선수가 판단을 내려 총을 발사한다. 최씨는 “평소 훈련을 많이 하면 소리의 강약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겨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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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유기원 트레이너(왼쪽)와 최보규 선수.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노르딕스키를 시작한 선수도 있었다. 이정민(32) 선수는 미국 조지아의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일하기도 했고,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영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했었다. 그런 그가 연봉 5000만원대의 직장을 그만두고 운동선수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평소 생활신조인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2013년 한 예능프로그램의 조정경기 특집을 본 후 앉아서 하는 운동인 ‘조정’의 매력에 빠졌다. 이씨가 앉아서 하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그는 ‘길랭바레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운동신경이 마비되는 희귀병으로 그는 현재 발목 아래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처음 이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조정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다가 지난해 평창 패럴림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노르딕스키선수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이씨처럼 하지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좌식스키에 앉아 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의 말이다. “장애인들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선수 생활을 하며 힘든 적도 많았지만 올해 초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했다.”

선수들이 노르딕스키를 타게 된 계기들은 각기 달랐지만 강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평창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꿈이다. 현재 한국은 노르딕스키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번 평창 패럴림픽은 다르다. 국가대표팀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의현 선수는 지난 3월 핀란드에서 개최된 ‘2016 부오카티 IPC 노르딕스키 월드컵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앞으로 남은 2년을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평창 패럴림픽에서 노르딕스키 종목 금메달도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노르딕스키 대표팀은 무려 280일이 넘는 훈련 일수가 계획돼 있다. 빙상강국인 핀란드, 러시아 등에서의 전지훈련도 실시할 예정이다. 최종인(53) 대표팀 감독의 말이다. “일단 메달은 색깔 구별 없이 최소 3개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인기종목이지만 기대를 갖고 우리 대표팀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장애인으로서가 아닌 선수로서 그들의 역동적인 경기를 주목해 달라.”

/ 김태형 기자 hyung@chosun.com